취미는 장비빨? 장비병과 동기부여 사이
- 춤추는늘보

- 5월 30일
- 3분 분량
시작은 가벼웠어요. 쿠팡에서 산 요가매트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새 집에는 매트만 세 개, 블록이랑 스트랩, 요가복까지 종류별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걸 발견하죠. 문제는 그걸 사놓고 정작 몇 번밖에 안 썼다는 겁니다.
이건 몇년 전 요가를 시작했다가 그만둔 제 이야기인데요. ‘혹시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얘기를 자주 해요. 장비부터 들이고 나면 왠지 마음이 놓이고, 다 갖춘 것 같아서 안심이 되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작은 못 하고, 물건만 남았을 때의 그 허무함과 자괴감이란. 오늘은 취미의 ‘장비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장비는 의욕을 끌어올리는 마법의 아이템 🪄

저는 현대무용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요, 이쪽 세계에서는 옷이 곧 장비예요. 더 잘 추는 사람일수록 옷도 더 튀어요. 특히 양말이 포인트죠. 빨강, 파랑, 형광 노랑 같은 눈에 띄는 색을 신으면 팔다리가 길어 보이고 움직임이 더 도드라져 보여요.
사람마다 자기 체형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따로 있고, 예쁜 옷을 입으면 확실히 춤출 맛도 나요. 멋진 옷 하나 새로 장만하면 괜히 연습하러 가고 싶어지고요.
비슷한 예로, 뜨개질이나 베이킹, 미술처럼 소모품이 중심인 취미들도 있어요. 실, 도안, 베이킹 틀, 물감 같은 것들은 쓰면 사라지니까, 꾸준히 취미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속 사게 돼요.
색깔별로 실을 모으고, 원하는 재료를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취미의 일부가 되곤 하죠. 수납 공간은 점점 줄어들지만, 한 편으론 그 물건들이 나의 시도를 증명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취미는 애초에 장비 가격대가 높기도 해요.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들은 오디오 장비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천만 원 넘는 앰프나 스피커도 많고, 한 번 좋은 소리를 들어보면 다시 저가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요.
'귀가 트였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 온다고 해요. 좋은 장비를 갖춘다는 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그 취미를 더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 있어요.
그리고 장비 수집 자체가 취미가 되기도 해요. 희귀하거나 멋진 디자인의 물건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감상하는 그 행위 자체에 만족을 느끼는 거죠. 장비가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취미의 중심에 있는 경우도 있는 셈이에요.
하지만, 장비부터 사는 건 조심해야 해요 🚨
문제는 취미를 해보기도 전에 장비부터 사는 경우예요. 저도 예전에 요가에 관심이 생겨서 요가매트, 블록, 옷까지 세트로 싹 사놓고 세 번 갔다가 그대로 방치했던 적 있어요. 장비는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열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그 마음이 장비 구매에서 끝나버린 거죠.
이런 경험, 아마 다들 한 번쯤 있으시지 않을까요? 괜히 돈만 쓰고 실천을 못했단 생각에 자책감이 들고, 그 장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그렇게 되면, 원래는 즐겁게 시작하려던 취미가 오히려 부담스러워져 버려요.
그래서 저는 이제 무언가를 시작할 땐, 되도록 작고 가벼운 도구로 시작해보려고 해요. 일단 재미를 느껴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계속 할 수 있을지를 먼저 확인한 뒤에 천천히 필요한 걸 늘려가는 편이에요. 딱 필요한 것만 사는 것도 나름의 쾌감이 있거든요. 돈을 쓰는 타이밍이 달라졌을 뿐, 애정의 크기는 그대로니까요.

장비 욕심,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
장비 욕심은 허영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취미의 핵심은 즐기는 마음이고, 장비는 그 즐거움을 확장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과해 보여도, 나에겐 꼭 필요한 동기부여일 수 있어요. 내가 그걸 쓸 때 기분이 좋아지고,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돼요.
물론 장비가 부담이 되는 순간도 있어요. 꼭 써야 할 것 같은 압박, 안 쓰고 있는 나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중요한 건, 그 장비가 내 취미 생활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지, 아니면 시작조차 어렵게 만드는 부담이 되는지 스스로 구분해보는 거예요.
그러니 솜씨님, 혹시 최근에 장비 지름으로 살짝 자책 중이셨다면 너무 걱정 마세요. 그건 어쩌면, 당신이 그 취미를 정말 잘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한 번쯤은 마음껏 사도 괜찮아요. 대신, 너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요.
Written by 춤추는늘보



